-
[ 목차 ]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여행지로 경남 하동 – 평사리 문학마을 & 섬진강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천천히 걷는 만큼 더 많이 느낀다”
느리게 흐르는 강, 그 옆에 피어난 마을
서울에서 하동까지,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며 도착한 이 작은 마을.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이토록 느리게 흐르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문학마을.
바람은 낮게 깔리고,
섬진강은 유리처럼 맑고,
마을은 고요했다.
이곳은 소설 『토지』의 배경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문학을 몰라도, 배경을 모른다 해도 괜찮다.
이 마을은 무엇보다 풍경이 문학적이다.
하늘과 산과 강이 삼각형을 이루고, 그 사이를 잔잔한 논이 채운다.
마치 어느 시인이 자연을 눕혀놓고 직접 그려낸 듯한 공간.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 마을에 도착했다.
볼거리도 검색하지 않았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 지도도 펴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걷다 보면, 이 마을은 발걸음에 따라 풍경을 내어주는 마을이다.
섬진강 따라 걷는 길 위에서 만난 것들
섬진강은 평사리 문학마을의 왼쪽을 따라 흐른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갈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었지만,
그 물결엔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섬진강 벚꽃길의 일부 구간을 걸었다.
봄이었다면 꽃잎이 비처럼 흩날렸을 것이고,
여름엔 반짝이는 햇살이 물 위를 덮었을 것이다.
내가 갔을 땐 늦가을이었고, 바람은 조금 쌀쌀했지만,
그 조용한 풍경은 너무도 따뜻했다.
걷는 내내 마주친 건 소박한 풍경들이었다.
누군가 놓고 간 나무 의자,
강을 향해 고개를 돌린 벤치 하나,
돌을 튕기며 놀던 아이와,
조용히 자전거를 밀고 가던 아저씨.
이 길은 걷는 이의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급하지 않아도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증명할 필요도 없는 길.
그저, 강과 함께 걷는다.
섬진강은 내 옆에서 말 없이 흘러가고,
나는 그 옆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마주하는 중이었다.
평사리, 그곳은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곳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
논 사이를 가로지르는 오솔길이 나를 이끌었다.
그 길 끝엔 최참판댁이 있었다.
드라마 세트장처럼 단정하게 다듬어진 한옥 군락이지만,
실제로 마을의 역사와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었다.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히 둘러볼 수 있었다.
한옥 처마 아래서 그림자처럼 앉아 있던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나, 혼자 왔나?”
그 말 한마디가, 이 마을의 분위기를 완벽히 설명해줬다.
여기선 시간도, 관계도, 말투도
모든 것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나는 문학마을 옆 평사리 들녘을 다시 걸었다.
노을이 시작되었고, 햇빛은 논 위에 누워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아주 오래전 어느 소설의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평사리는 그런 마을이었다.
“시간이 느려지면서, 감각은 또렷해지는 곳.”
마무리하며
사람들은 흔히 “조용한 여행지”를 찾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런 곳에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곤 한다.
하지만 하동 평사리는 다르다.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된다.
걷는 것, 바라보는 것, 숨 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마을.
섬진강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평사리의 힘이다.
소리 없는 위로,말 없이 전해지는 환대.
당신도 그 조용한 품에 한번 안겨보기를.